논문 정보
경락(經絡)의 순환(循環)과 정기(精氣) 생성(生成)의 관계에 대한 연구 [논문열람(PDF)↗]
- 저자
- 백유상(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원전학교실)
- 학술지
- 『대한한의학원전학회지』
- 권호
- 제17권 제4호
- 발행 연도
- 2004
- 태그
이 기사는 입문자를 위해 간략히 설명된 Atlas Basic Ver.이며, 보다 정밀한 해설은 Atlas Original Ver.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 줄 요약
이 논문은 경락의 유주를 ‘하나의 순환’으로만 고정하지 않고, 순환성 유주와 일방적 유주가 함께 작동하며 생명에서 서로 다른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을 다시 보게 만든다.
논문의 문제의식
한의학에서 기와 혈의 운행을 말할 때, 경락을 따라 끊임없이 도는 순환적 유주가 거의 유일한 설명 방식처럼 굳어져 온 경향이 있다. 영기가 십이경맥을 따라 순환해 전신을 자양하고, 위기가 체표를 방어하며, 그 결과 장부 기능이 유지된다는 교과서적 설명은 정리된 결과로서 이해하기에는 충분하다. 그러나 생명 과정에서 정기(精氣)가 어떻게 ‘새로 생성’되고, 어디로 ‘귀속·축적’되는가라는 질문은 이 순환 설명만으로는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다. 저자는 바로 이 공백에 주목하여, 원전 속에는 순환으로 환원되지 않는 또 다른 유주 노선, 곧 말단에서 내부로 수렴해 들어오는 일방적 유주가 분명히 제시되어 있음을 드러내고자 한다. 이 문제의식은 기존 설명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당연시해 온 설명이 생명 현상의 특정 국면을 선택적으로 강조한 결과일 수 있음을 자각하게 하는 데에 놓여 있다.
논의의 전개
- 논의는 먼저 순환성 유주가 어떤 구조로 서술되는지 정리하는 데서 출발한다. 수곡지정이 중초에서 전환되고, 종기를 거쳐 영기로 분화되어 십이경맥을 따라 끊어짐 없이 순환한다는 틀이 여기서 핵심이 된다.
- 이 단계에서 경락은 ‘연결성과 연속성’을 보장하는 구조로 기능하며, 영기의 유주는 전신을 고르게 자양하는 활동 국면을 설명하기 위해 호출되는 설명의 축이 된다. 그래서 기의 운행은 전신으로 퍼져 나가는 발산적 성격을 띠게 된다.
- 그러나 원전에서 반복되는 오수혈, 본수, 근결, 표본 같은 개념들은 순환의 변주로만 처리하기 어렵다는 점이 다음 단계의 출발점이 된다. 이 개념들은 말단에서 시작해 안쪽으로 들어가는 방향성과 단계성을 전제할 때 더 설득력 있게 자리를 잡는다.
- 여기서 논의는 ‘도는 것’ 중심의 설명에서 ‘들어와 맺히는 것’ 중심의 설명으로 이동한다. 오수혈의 井·滎·腧·經·合은 말단에서 깊이로 이동하는 흐름을 보여 주고, 본수는 그 흐름이 장부로 귀속되는 결절점임을 성립시키는 자리가 된다.
- 마지막으로 저자는 일방적 유주의 귀결을 정기의 생성·귀속으로 묶어 정리한다. 하초, 오장, 혈해, 충맥, 임맥 같은 구조가 ‘수렴이 이루어지는 기반’으로 제시되면서, 순환과 수렴이 대립이라기보다 서로 다른 생리 국면을 설명하는 두 축으로 함께 성립함이 완성된다.
연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지견
- 이 연구는 기와 혈의 유주가 하나의 고정된 메커니즘으로만 이해될 수 없다는 인식을 제공한다. 순환성 유주는 활동·자양의 국면을 설명하는 데 중심적으로 호출되고, 일방적 유주는 생성·귀속의 국면을 설명하기 위해 필요해지는 축으로 등장한다.
- 이 이원 구조를 통해 장부 역시 항상적 ‘기능 단위’라기보다, 유주 국면에 따라 설명의 중심으로 떠오르는 자리로 재배치된다. 그래서 정기 또한 이미 완성된 실체라기보다, 유주 구조가 수렴 쪽으로 전환될 때 성립하는 결과 개념으로 읽히게 된다.
연구의 의의
- 이 논문의 의의는 새로운 학설을 ‘추가’하는 데보다, 원전에 이미 있던 여러 개념을 순환 설명 하나에 흡수해 온 독해 관행을 되돌아보게 하는 데에 놓여 있다.
- 입문 단계에서는 특히, 정의를 외우기 전에 설명이 선택되는 이유를 먼저 묻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교육적 의미가 크다. 한의학 이론이 단일 정답이 아니라, 서로 다른 생리 국면에 대응하는 설명들의 조합이라는 감각을 남기기 때문이다.
이 연구의 주목할 만한 특징
한의학 측면
- 이 연구는 기혈 운행을 단일한 순환 체계로 고정하지 않고, 발산적·분산적 순환과 내향적·수렴적 유주를 구별해 사고하도록 유도한다. 이 구별은 개념을 늘리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서로 다른 생리 국면을 설명하기 위한 개념적 자리를 분명히 하는 방식이다.
- 또한 장부를 고정된 저장소로 두기보다, 유주 국면이 바뀔 때 설명의 중심으로 전면화되는 위치로 재설정한다. 그 결과 개념은 정태적 정의가 아니라, 과정 속에서 이동하는 설명의 초점으로 읽히게 된다.
원전학 연구 측면
- 이 논문은 원전학이 단순 번역이나 주석 나열이 아니라, 텍스트 안에서 개념이 어떤 문맥에서 반복되고 어떤 자리에서 호출되는지를 함께 읽어 내는 작업임을 보여 준다.
- 『황제내경』 속 개념을 단편으로 분리하지 않고, 순환 설명이 성립하는 조건과 수렴 설명이 요청되는 조건을 문맥 전체에서 추적함으로써, 고전이 ‘정의집’이 아니라 설명의 기록이라는 감각을 강화한다.
한계 또는 쟁점
- 이 연구는 정기 생성과 귀속을 밝히는 데 초점을 두었기 때문에, 이 틀이 임상·병리 단계에서 어떻게 더 확장되는지까지는 충분히 다루지 않는다.
- 또한 순환과 수렴이 생명 과정에서 동시에 조율되는 방식은 추가로 탐색할 여지를 남긴다. 이는 한계이면서도 다음 질문을 가능하게 하는 지점이다.
관련 용어 정리
營氣(영기)
순환적 유주를 대표하는 개념으로, 경맥과 십이경맥의 고리형 구조 위에서 전신 자양의 국면을 설명하기 위해 호출된다.
精氣(정기)
순환의 결과라기보다 일방적 유주가 안으로 수렴하며 성립하는 결과 개념으로, 특히 하초를 근거로 귀속·축적의 설명이 전개된다.
循環的 流注(순환적 유주)
기가 전신으로 퍼져 자양하는 발산 국면을 설명하기 위해 선택되는 유주 층위이다.
一方的 流注(일방적 유주)
사지 말단에서 체간·장부 쪽으로 들어오며 모이는 수렴의 흐름을 설명하기 위해 설정되는 독립 축이다.
五輸穴(오수혈)
井·滎·腧·經·合의 단계 구조를 통해, 말단에서 내부로 ‘깊어지는’ 일방적 유주의 방향성과 과정성을 성립시키는 도식으로 사용된다.
本輸(본수)
말단에서 들어온 흐름이 장부로 귀속되는 결절점으로, 수렴 설명을 논리적으로 성립시키는 관문이 된다.
의미관계망 분석
관계쌍 1
이 연결은 경락 설명의 첫 층위를 이룬다. 경맥, 특히 십이경맥의 고리형 배열이 순환적 유주라는 설명을 성립시키는 형식으로 작동하며, 그 위에서 영기가 전신 자양의 발산 국면을 대표하게 된다.
관계쌍 2
이 연결은 순환과 구별되는 두 번째 유주 층위를 구성한다. 오수혈의 단계성과 본수의 결절성이 결합되면서, 말단에서 시작한 흐름이 내부로 수렴하고 장부로 귀속된다는 설명이 가능해진다.
관계쌍 3
이 연결은 수렴 설명의 결론부를 묶는다. 정기는 오장에 귀속되는 것으로 서술되지만, 그 귀속이 성립하기 위한 공간적 기반이 하초로 제시되며, 정기가 ‘생성·축적’되는 국면을 분명히 한다.
더 살펴볼 문제
- 정기가 생성된다는 말은 생명 과정에서 어떤 ‘상태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필요해지는 표현인가.
- 순환과 수렴은 같은 생명 과정 안에서 언제, 어떤 조건에서 서로 다른 설명으로 선택되어 등장하는가.
- 교과서에서 익숙하게 배운 장부 기능 설명은 어떤 유주 국면을 전제로 성립하며, 다른 국면을 포함시키면 무엇이 달라지는가.